문화일반

[율곡에게 길을 묻다]지역 살리기 위해 중앙의 권한 이양 요청했던 율곡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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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트랜스 로컬의 시대, 자치분권은 어떻게 가능한가

◇청주 공원에 있는 서원향약비. 율곡은 1571년 6월 청주목사로 임명돼 서원향약을 만들어 지역민들의 뜻을 하나로 모은다. 율곡은 향약을 통해 지방관이 지역민들의 자발적 참여와 자치가 가능할 때 새로운 지역성이 구성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서원향약을 통해 자치분권의 첫발을 디딘다.

서원향약으로 '자치분권' 구상 제출

지방관만이 아니라 지역주민에 의한

자발적 참여·자치로 새 지역성 구성

'과도한 수취 지역 망하게 한다' 생각

'감사구임론'이나 '주현병합론' 제시

지역민의 부역·요역 최소화 등 논의

강원도 동해안을 남북으로 연결하는 7번 국도를 따라 속초를 거쳐 간성 방면으로 향하다 보면 공현진초교를 지나게 된다. 한 해 졸업생이 대여섯 명에 불과하지만 독일에서 시작된 발도르프 교육을 공교육에 적용해 혁신교육활동이 수행되기도 했던 이 학교 운동장 한구석에는 오늘도 바람의 흐름에 따라 경계가 유동하는 팻말이 하나 서 있다.

풍향계가 달린 팻말의 위쪽 '우리 공현진'에서부터 간성, 속초, 서울, 파리, 리우데자네이루와 같은 특정 지역이나 도시에 이르는 거리가 적혀 있다. 국민국가 행정단위의 '대한민국 공현진리'에서 지역의 경계를 넘어(Beyond) 국경을 가로지르고 횡단해(Trans) 지구촌의 낯선 장소와 지역을 서로 연결하고 있다.

심상하게 여길 수 있는 작은 팻말은 뜻밖에도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의 장소와 공간들이 '로컬(Local)'이라는 '새로운 관계와 의미망'을 구성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는 이미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로컬들이 경계를 넘나들며 횡단하는 '트랜스 로컬(Trans local)의 시대'를 살아가는 중이다.

트랜스 로컬의 시대는 지역에 머물며 세계를 보려 했던 세계인 괴테만이 아니라 '선유담(仙遊潭)이 있었던 공현진'에 사는 지역민들도 유럽을 지방으로 여길 수 있는 그런 세상과 다르지 않다. 우리는 이와 같은 '트랜스 로컬의 시대'에, '인구 절벽의 시대'에, 지방의 역량을 강화하고 활성화하는 동력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율곡은 먼저 그 시대가 요구하는 시대정신(時宜)이 무엇인지 파악하라고 한다. 그리고 시의에 힘써서(時務) 실제적인 효과(實功)를 거둬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것은 지역민들의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지역의 문제를 자치역량을 통해 해결하는 방식과 연결된다.

우리는 여기서 율곡이 신유학을 공부한 도학적 성리철학자라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율곡에게 '경세제민(經世濟民)'은 곧 '안민(安民)'이었다. '민과 더불어서(與民)', '함께 화락하게 사는 삶(同)', 그런 삶이 율곡이 꿈꾸는 세상살이였다.

그리고 율곡은 말한다. “임금은 백성을 하늘로 삼고 백성은 식(食)을 하늘로 삼는 것이라, 백성이 하늘을 잃으면 국가가 의존할 데를 잃어버립니다.”(율곡전서 권25, 성학집요, 제8장 안민)

백성이 무너진 상태에서 국가는 존립할 수 없다. 그러니 국가는 '백성의 하늘인 밥'을 보장해 줘야 한다. 적어도 '밥과 밥그릇'을 빼앗지 말아야 한다. 율곡은 맹자처럼 “밥심이 있어야 예교가 있다”는 '선부후교(先富後敎)'의 입장이다.

율곡의 이 같은 철학은 책상머리에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그는 당시 동년배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세상에 대한 '실전 경험'이 많았다. 율곡은 '책상물림' 스타일의 지식인이 아니었던 것이다.

1551년 봄, 율곡은 당시 수운판관이었던 아버지(이원수)를 따라 2∼3개월에 걸쳐 평안도와 황해도 일대를 돌아보며 부조리한 조세 수취제도의 실상을 경험했다. 이후 율곡은 1557년 4월부터 1560년 7월까지 햇수로 4년을 낙중(洛中)의 경상도 성주에서 성주목사 노경린의 사위로 살아간다. 그리고 1562년에는 장인 숙천부사 노경린을 따라 5년여 동안 평안도 숙천에 살았다.

율곡은 성주와 숙천에서 '수령의 사위'라는 신분으로 지역 사족들의 연회나 시회에 참여하면서 지역 여론 주도층의 역할을 확인하고 민심의 소재를 파악할 수 있었다. 특히 서원 건립 운동을 통해 지역민들이 지역에 대한 자부심을 확보해 나가는 과정은 지역역량을 극대화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다. 율곡이 성주와 숙천에서 경험했던 지역 활성화의 방향은 이후에 지역 살리기 자치 프로젝트인 '향약'으로 구체화된다.

1564년 8월, 율곡은 대과에 장원급제해 비로소 자기 정치를 할 수 있는 벼슬길에 나선다. 출사하기 전이 '안민' 철학을 숙성하는 기간이었다면, 출사 이후는 그의 철학을 현실 속에 구체화하는 '응전'의 시간이었다.

율곡은 1571년 6월 청주목사로 임명돼 자치분권을 위한 매우 중요한 구상을 제출한다. 그것이 '서원향약'이다. 지방관만이 아니라 지역민들에 의한 자발적 참여와 자치가 가능할 때 새로운 지역성이 구성될 수 있다는 것이 율곡의 생각이다.

이후 1574년 10월, 율곡은 황해도 관찰사로 부임하면서 지역을 살리기 위해서는 중앙의 권한을 이양할 것을 요청했다. 과도한 수취는 수탈이고 지역을 망하게 만든다는 것이 율곡의 입장이다.

율곡이 제안했던 '감사구임론'이나 '주현병합론'은 '지역의 삶'이라는 맥락에서 제시된 것이다. 지역을 제대로 관리할 수 있는 감사에게 권한을 줘 임기를 보장해 주고, 불필요하게 세분화된 지역을 병합해 지역민들이 부담해야 할 각종 부역과 요역을 최소화하자는 논의다.

여기서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대상이 백성이다. 백성이 곧 지역민이고, 그 지역민의 삶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인식이다. 지역민의 삶은 곧 지역의 삶이 제대로 보장되는지 그 여부에 달려 있다. 지역민의 삶은 그래서 지역 제대로 알기와 직결된다.

코로나19와 기후변화로 인한 재난을 경험하면서 '사람과 사람', '로컬과 로컬'이 촘촘하게 연결되는 '초연결'의 트랜스 로컬 시대는 역설적으로 지역과 로컬 사람들이 오히려 강조되는 시대임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이런 흐름은 주민 스스로가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면서 지역의 역량을 강화하려는 우리 시대의 자치분권을 위한 사회적 실험과도 맞물려 있다.

지방이 활성화되고 지역의 균형발전이 가능하게 되는 동력은 율곡의 제언처럼 로컬에 사는 사람들의 지역에 대한 재인식과 일상적인 삶의 방식에 대한 성찰에서부터 비롯한다. 자신들의 '일상성'을 어떻게 구성하고 발견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 관건인 셈이다.

결국 트랜스 로컬 시대는 한마디로 '로컬의 재발견'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장소와 지역, 내 삶의 일상성이 깃들어 있는 공간을 재발견해 '지역주체'가 되는 것이다. 우리 시대에 자치와 분권 역시 장소와 지역의 역사와 가치에 대한 재발견과 재구성에 달려 있다. '지역성'을 어떻게 구성하고 재발견할 것인가, 이것이 핵심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 지역의 힘은 우리 곁에 있는 장소와 생활공간을 재발견하는 데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김경호 전남대 호남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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