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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칼럼]이기적 유전자의 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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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재 율곡연구원장

세밑이다. 조금 있으면 크리스마스 캐럴들이 어김없이 거리를 배회하며 한 해의 일몰을 되돌릴 수 없는 기정사실로 만들 것이다. 하지만 졸업식장의 단골 멘트처럼, 무언가 끝난다는 것은 한편으로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기도 한다. 낡은 달력이 걸려 있는 자리를 대신할 새 달력의 날짜들을 짚으며 누구는 학교에 갈 기대에 부풀고, 누구는 결혼을 꿈꾸고, 누구는 승진을 기다리고, 누구는 새집에 입주할 날을 손꼽을 것이다. 세밑이라는 단어가 마냥 상념에만 젖게 하지 않는 이유다.

그럼에도 올해 세밑은 결이 다른 것 같다. 코로나19의 새로운 팬데믹 때문이다. 국민의 70%가 2차 백신 접종을 완료하면 집단면역에 도달할 것이고, 그러면 이 지긋지긋한 역병의 시대도 끝날 것이라는 기대는 새로운 변이종 오미크론의 등장으로 유보됐다. 오미크론은 증상이 덜 심각한 변이종으로 추정되므로 오히려 코로나19의 종식을 앞당기는 '크리스마스 선물'이 될 수도 있다는 일부의 예측도 다시 일상을 멈춰야 하는 고통스러운 상황에 서 있는 이들에게는 여전히 희망 고문일 뿐이다.

오미크론의 유행을 두고 국제사회에서는 선진국의 책임을 거론하는 견해도 빗발친다. 전염병은 그 속성상 전파지역 전체를 대상으로 방역을 해야 함에도 국가 이기주의에 매몰돼 자국민의 백신 접종률을 높이는 데에만 몰두하고 있는 선진국들의 행태를 겨냥한 비판이다. 그 결과 백신 사각지대에 놓인 가난한 나라들에 또 다른 변이종이 자랄 토양이 만들어졌고, 그것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고 있다는 것이다. 부스터 샷은 고사하고 전 세계적으로 아직도 1차 접종률이 한 자릿수를 벗어나지 못하는 나라가 수두룩한 현실을 고려하면 과히 틀린 말이 아니다.

적자생존의 원리에 기반을 둔 자연선택론은 생물종의 진화에 관한 한 거의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이론이다. 하지만 반대의 이론도 있다. 상호 협동과 연대가 진화의 주된 동력이라고 보는 '상호부조론'이 그것이다. 여기에 따르면 모든 생명체는, 이를테면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처럼, 경쟁이 아니라 때로는 종의 경계를 넘어서기까지 하는 상호부조를 통해 살아 남아왔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선진국들이 보이고 있는 행태는 자연의 이런 오랜 관행에 반한다. 물론 생물종 간의 그런 협동과 연대도 사실은 이타적인 행위가 결국은 자신의 생존에 유리하다는 것을 진화의 과정에서 터득한 유전자의 간교한 지혜의 결과라는 주장도 있다. 근래 널리 알려진 '이기적 유전자' 이론이다.

상호부조론과 이기적 유전자론 가운데 어느 것이 생물종의 진화를 더 정확하게 설명하는지를 여기서 따지기는 어렵다. 그러나 설령 이기적 유전자 이론이 맞다 하더라도, 새로운 팬데믹 상황을 보노라면 작금의 인류는 함께 사는 것이 결국은 내가 잘 사는 것이라는 그 이기적인 계산 능력조차 무뎌져버린 것이 아닌가 싶다. 코로나19로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리고 있는 이웃들의 고통을 개인의 복불복으로 치부하는 우리 사회 일부의 이기심에도 적용되는 말이다. 모든 것은 끝이 있다더니, 지혜로웠던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의 후예들은 이제 바야흐로 호모 스투피도(Homo stupido)로 퇴화하고 있는 걸까? 혼자 잘 사는 것은 결국 공멸로 가는 길임을 잊은 헛똑똑이가 돼 가는 것을 보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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